아래의 내용은 이희재의 <번역의 탄생>(교양인, 2009)의 17장 "맞춤법도 법이다"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표기의 불안정성
안정된 맞춤법이 있으면 문화를 공유하는 데 매우 유리하다.
말을 얼마나 정확하게 적을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글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판단할 수 있다.

'정확하게 적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인가?

옛날에는 한글을 소리 나는 대로 적었다. 지금은 '샘이 깊은 물은'이라고 적지만 옛날에는 '새미 기픈 므른'이라고 적었다. 앞의 것을 '끊어 적기'라고 하고 뒤의 것을 '이어 적기'라고 한다. 끊어 적기는 한국어의 형태소를 올곧게 담아내는 데 안성맞춤이다. 끊어 적기를 한 덕분에 한국어는 '샘'이라는 형태소, '깊'이라는 형태소를 얻었다.

지금은 '끊임없이'라고 적지만 옛날 책을 보면 '끈힘업시'라고 적었고, '높이'를 '노피'로 적었다. '끈힘업시'를 '끈힘없이'로 적은 것은 국어학자들이 한국어의 형태소를 명확히 분석해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다양한 받침을 적을 수 있는 한글의 장점 덕분이기도 하다. '자르다'라는 뜻을 가진 형태소 '끊'을 파악하여 글자에 담아낸 것이다. 그래서 이제 한국인은 '끊'이라는 형태소와 '끈'이라는 형태소를 구분한다. 마찬가지로 '없'이라는 형태소와 '업'이라는 형태소를 구분한다.

맞춤법을 지킨다는 것은 형태소를 지킨다는 뜻이기도 하다. 맞춤법이 흐트러지면 형태소도 무너진다. 그래서 나중에는 '없는 이'와 '업는 이'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며 '끊기'와 '끈기'의 변별력도 잃게 된다.

맞춤법이 무너지면 다양한 형태소를 나타낼 수 있는 한국어의 무한한 잠재력이 망가지고 결국 한자에 다시 기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한글은 처음에는 소리글자였지만 점점 뜻 글자로 가능성을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가능성을 확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받침이고 형태소이고 맞춤법이다.

맞춤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원어에 충실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명료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이다.

<틀리기 쉬운 맞춤법>

지금으로서는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다.
직원을 대하는 사장의 태도가 회사의 성공을 가름한다.
점심과 함께 나누는 오붓한 담소를 전화 통화로 갈음할 수 있을까요?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을 보나?
국어를 영어로 가르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 값이면 거저나 마찬가지네.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자기 계발에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신약 개발에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남편이 코를 골아서 간밤에 통 잠을 못 잤어요.
배를 곯아본 사람은 그 심정을 알지요.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분이랍니다.
덕분에 만 원 굳은 셈이네요.

선배를 깍듯이 모시라니, 여기가 무슨 군대입니까?
콩나물 값 깎듯이 인건비를 깎으면 어떡합니까?

가보니까 별 거 없데.
내일 눈이 온대.

어찌나 춥던지 손이 다 곱았어.
가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누이가 애 딸린 이혼남과 결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 공부하려니까 체력이 달린다네요.

새로 방을 하나 드려서 세를 놓읍시다.
돈 들여 새 옷을 맞출 필요 없어요.

퇴근길에 잠깐 가게에 들렀습니다.
하도 소음이 심해서 말소리가 잘 안 들렸습니다.

요즘은 눈에 띄는 신인이 통 없다.
모처럼 활기 띄는 추석 재래시장을 찾아가보았습니다.

"들어오지 마라!" 하면 들어오지 말아야지.
들어오지 말라니까 정말 안 들어오던데?

사짅의 빛바램을 막아줍니다.
사진을 잘 찍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Posted by 공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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